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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토전생[穢土転生] 2-1 : 아프리카, 우간다, 그리고 타무수자(Justinian Tamusuza) 2부
예토전생[穢土転生] 2-1 : 아프리카, 우간다, 그리고 타무수자(Justinian Tamusuza) 2부
  • 노승주 기자
  • 승인 2019.11.13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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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유스티니안 타무수자 (Justinian Tamusuza)<br>
▲작곡가 유스티니안 타무수자 (Justinian Tamusuza)<br>

유스티니안 타무수자는 캄팔라의 마케레레 대학(Makerere University)에서 작곡 학사를 받았다. 마케레레 대학이라는 공간은 나에게 다양한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대개 시각적인 이미지다. 우선, 이것부터 말해두겠다. 마케레레 대학이 위치한 도시이자 우간다의 수도인 캄팔라는 굉장히 복잡하고 번화한 곳이다. 도시 중심부가 아닌 이상 3층 이상의 큰 건물은 보기 힘든 게 사실이지만 번화가와 교외를 불문하고 빈틈없이 건물이 지어져 있어 공터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습도와 기온이 항상 높은 편인 이 도시의 거리엔 항상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흥미로운 것은 대비 효과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건물들의 외형이 만들어내는 대비다. 주거지역의 건물들을 보면 테라스나 창문의 모습에서 20세기 초중엽의 예스러운 건축 스타일을 볼 수 있다. 도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 건물들은 그러나 쇠락의 느낌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외려 지속적인 관심과 노동을 통해 개축되고 보수되어온 이 건물들에선 어떤 생동감마저 느껴진다. 캄팔라에선 밤이 되어도 도시의 불이 꺼지지 않는다. 다소 불규칙하게 듬성듬성 서있는 가로등은 백색광을 발하며 낮과 다르지 않은 기세로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시야를 밝힌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도시의 경관 안에서 불쑥불쑥 ‘매끈한’ 건물들을 보게 된다.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는 맨션 앞마당의 칼같이 잘려나간 잔디, 전면 유리로 시공되어 수십층높이로 우뚝 솟은 우간다 사회보장기금의 빌딩. 초목과 인간의 건축물이 방임과 관리의 아슬아슬한 경계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다른 지역과 비교해볼 때 이 몇몇 건물들의 기계적 매끈함은 묘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여기서 빈부격차 같은 것을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요컨대 이런 것이다. 어떤 사회든 사회 전체가 가진 부를 조금씩 거두어 특정한 영역에 집중 투자하기로 합의를 보기 마련이다. 그것은 개인이나 소규모 공동체가 너무 규모가 크지만 전체 사회 구성원의 삶에 있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어떤 것인 경우가 많다. 국방, 공교육, 복지 등등... 이것은 다시 말해 어떤 적극적인 ‘선택과 집중’이다. 모두의 생활에서 조금씩의 여유분을 떼어내 만든 하나의 매끈한 재단, 혹은 사원. 거기에 기여한 사람들은 그것을 세움으로써 자기 삶이 더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그곳에 투사한다.     

 

그리고 마케레레 대학으로 다시 돌아와 보자면, 나는 이 학교 역시 그런 선택과 집중의 결과 중 하나라고 본다. 아니 단순히 그 결과 중 하나인 정도가 아니라 마케레레 대학이라는 곳 자체가 어떤 '매끈함'의 아이콘, '매끈함'의 심벌이다. 이 넓고, 나름의 스타일로 세련되고, 티끌이나 어떤 부서지고 무너진 귀퉁이라곤 조금도 없는 이 학교는 아프리카 전체에서는 8번째로 좋고 우간다 내에서는 명실상부 가장 좋은 대학이라고 평가를 받는다. 나는 쉽사리 이 대학에 대해 우간다 사람들이 가진 자부심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케냐, 수단 등 인근 국가 유력 집안의 자제들이 유학을 오는 학교. 지역의 수많은 유력 정치인과 작가를 배출한 학교. 그리고 그들이 자랑스러운 동문 모임에 빠짐없이 참석함으로써 갓 성인이 된 재학생들로 하여금 자신들과 이 사회의 지도층간의 튼튼한 연결고리를 수시로 깨닫게 하는 학교.      

그리고 우리에게 중요한 음악 측면에서 보자면 이 학교는 우간다 전체에서 몇 안 되는 제대로 된 서양음악 교육과정을 갖춘 학교이기도 하다. 사실 '몇 안 되는'이라고 했지만 그 몇 안 되는 학교들 중 마케레레 대학을 제외한 나머지 학교들은 오로지 음악교육에만 초점을 맞춰 세워진 특수교육기관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마케레레 대학은 우간다 안에서 체계적인 서양음악교육을 제공하는 유일한 종합대학이라고 해야 옳다. 이를 수도 캄팔라 전체에 제대로 된 교향악단이 캄팔라 주니어 오케스트라 단 하나밖에 없는 사정과 함께 생각해본다면 우간다에 클래식 음악 인프라가 얼마나 부족한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우간다 사회 내에서 토착 음악이 여전히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 바가 크다. 일종의 '공식적'행사나 의전을 위한 음악으로 여겨지는 클래식은 '국가적'이고 '공식적'인 행사 밖에서는 접하기 쉽지 않은, 다시 말해 유니세프에서 주최하는 말라리아 퇴치 캠페인의 세리머니나 크리스마스 시즌의 전국적인 종교행사에서나 들을법한 음악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어쨌든 마케레레 대학은 체계적인 서양음악 교육을 제공하는 유일한 대학으로 남아있다. 마케레레 대학 작곡과를 다니는 학생의 블로그 일기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일기 속 학생에게 있어 마케레레 대학의 작곡과에 간다는 것은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이라는 틀을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라도 탈피하여 '서양적 보편'에 가닿는 예술가로 자신을 규정하고자 하는 욕망과 관련되어있는 듯했다. 그러나 우간다에는 앞서 보았던 것과 같은 강력한 민속음악적 전통이 살아있기에 학교에 들어가고 나면 정신적 차원에서 배우는 서양음악의 다양한 측면들과 자신의 신체에 기입된 우간다 민속음악의 측면이 만들어내는 충돌과 조화에 대한 고민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물론 고작 한 명의 이야기이니 나머지 전체의 실상이 정확히 어떨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일기가 흥미를 끄는 부분이 하나 더 있는데, 그는 자기 학교 출신의 성공한 작곡가, 즉 자신이 롤모델로 삼는 작곡가로 유스티니안 타무수자를 거론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 타무수자는 자신이 하고 있는 그러한 음악적 고민을 나름의 방식으로 잘 해결해낸, 성공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는 모양이다.)     

 

 

어쨌든 유스티니안 타무수자도 이 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그는 그의 동기들과는 다소 다른 학창 시절을 보냈는데, 그가 학교 측에 자신은 서양음악이 아닌 부간다 민속음악의 연구를 계속해나가고 싶다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학교 측은 이러한 요청을 받아들여 그가 민속음악 연구를 계속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이때까지 평생 부간다 민속음악만을 향유해오던 그는 우간다에서 유일하게 서양음악 교육을 제공하는 최고의 명문대에 입학했고(아마 들어가기 위해 무척 노력해야 했을 것이다.) 그곳에서 서양음악이 아니라 부간다 민속음악을 계속 공부하길 원했던 것이다. 이런 비범한 학창 시절을 보낸 그는 대학을 졸업한 이후 영국과 미국으로 각기 석사 및 박사 유학을 떠난다. 그가 서양음악을 계통을 세워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이 유학시절이 처음이었으리라. 언제 그가 서양음악을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심경의 변화는 학부생 시절에 일어났으리라 쉬이 추측해볼 수 있다.      

이후 유스티니안 타무수자는 뉴저지주의 작곡가 연맹 회원이 되기도 하고 ISCM 세계음악제 심사위원, 아프리카 95 임원 등 국제적인 포지션들을 다양하게 맡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그의 작품들이 연주되는 반경은 아프리카라는 지역사회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 지역 사회 안에서는 활발히 작품이 연주되는 작곡가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 음원이나 영상이 본격적으로 녹음 녹화되어 자료로서 공개되는 일도 많지 않다. 이는 현지의 열악한 장비 사정 탓으로 보이는데 여타 작곡가들처럼 유럽 등지나 영미권에서 연주가 자주 되었다면 아마 그의 이름은 지금보다는 더 많이 알려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는 그 자신이 말했듯 그의 음악이 서양악기라는 외피를 입고 있고 오선지라는 도구로 기호화되어있음에도 철저히 작곡가 자신의 '부간다적' 뉘앙스 위에 서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연주자 자신이 그 뉘앙스를 잘 알거나, 아니면 작곡가가 적극적으로 연주자와 소통하며 연주를 점차적으로 '완성해가지' 않는 한 그 연주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 크로노스 콰르텟과의 협업이 그의 작곡가로서의 인생에 하나의 큰 전환점이 되었던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생소한 작품이라도, 아니 오히려 생소한 작품일수록 모든 열의와 노력을 다해서 작곡가의 의도를 이해하고 그것을 구현하려 사력을 다하는 크로노스 콰르텟 정도가 아니면 그의 음악을 '먼 거리'에 있는 음악인이 제대로 구현해내기란 어려운 것이다.     

 

 

이런 지역 음악가의 또 다른 사례로 Meki Nzewi를 이야기해보고 싶다. 나이지리아의 작곡가이자 대학교수인 그는 타무수자와 마찬가지로 아프리카 토속적 유산을 바탕으로 음악을 만드는 것을 추구한다. 그와 타무수자의 큰 차이점은 그는 타무수자와는 달리 소리를 구현하는 수단으로 서양악기를 고집하지 않고 아프리카 악기를 자유롭게 사용한다는 것이다. 또한 타무수자가 그가 뿌리를 두고 있는 부간다 음악의 즉흥성을 단지 뉘앙스 차원에서 암시하는 것과 달리 Meki Nzewi는 그러한 즉흥성을 음악 안에 적극 틈입시킨다. 더구나 그는 자신의 음악 연주 대부분에 자신이 직접 연주자로 참여하기도 한다. 마치 재즈 아티스트들이 서로 콜라보를 하듯 말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그의 음악은 타무수자의 음악보다도 한층 더 서구권 연주자들에 의해 재현되기 어렵다.      

나는 여기서 우리나라 서양 음악계의 영원한 화두 중 하나인 서양음악과 자국 음악의 조화라는 측면에 있어서 반면교사가 될지도 모를 지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사실, 뉘앙스의 문제는 한국음악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화두다. 한 문화권에서 만들어진 틀로 다른 문화를 측량하기 시작하는 순간 측량대상이 되는 문화가 가진 어떤 폭넓음이 금세 얇고 건조해지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누군가 5 음음계가 곧 한국음악이라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약간 불쾌하고 또 불편할 것이다. 한국음악을 한국음악이게 하는 요소들은 그 음계라는 서구적 분석의 틀 밖에 있는 수많은 뉘앙스들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구 음악과 한국음악의 조화라는 과제 앞에서 이 뉘앙스가 작곡가들의 입장을 상당히 갈라놓게 된다. 우선 하나의 길이 있다. 그것은 이 뉘앙스들을 대부분 잘라내고 서양음악과 매끈하게 결합 가능한 파편들만을 도려내어 그것을 '서양음악의 표현을 확장시키는 재료'로 사용하는 것이다.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음악들을 통해 우리는 영국이나 프랑스 등 서양의 작곡가들이 이런 작업을 많이 했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 시대에 수많은 동양 출신의 작곡가들이 키치적 예술가라는 혐의를 받으면서도 이런 작업을 열심히 해나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이것이 하나의 번듯한 미학적 방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접근을 통해 좋은 예술을 만드는 것, 당연히 가능하다.

두 번째 길은 뉘앙스를 그대로 지키되, 보편 음악 씬에서 하나의 '취급대상'으로 인정되기 위한 세련화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무척이나 어려운 것이다. 우선 그 세련화라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음악이야말로 문화적 맥락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이어서 수용자의 문화 언어에 걸맞은 문법과 언어적 차원의 번역 작업이 없다면 청자는 자신의 감상 맥락과 벗어난 새로운 종류의 음악을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 뉘앙스를 유지하면서 이 번역 작업을 매끄럽게 해내기 위해선 자신이 하는 토착 음악에 대해서는 물론이요 보편 음악 씬에 대해서도 예민하고 정교한 감각을 가져야 만한다. 자기 지역 음악의 가치에 대한 종교적 확신이 없다면 이런 어려운 작업을 해나가는데 필요한 동력을 얻기가 참 힘들다.     

 

 

유스티니안 타무수자가 이 두 번째 길을 선택했음은 명백하다. 그리고 강고하게 존재하는 토착 음악 문화의 힘이 그로 하여금 그 길을 걷는 데에 동력, 혹은 믿을 토양이 되어 주었음을 알 수 있다. 일종의 자신감이랄까 그런 게 있다. 서양악기로 자국 음악의 뉘앙스를 구현하려고 할 때 발생하는 필연적인 충돌(작곡가 자신이 '우스꽝스럽다'라고 표현하는)에 대해 그는 전혀 개의치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자기 음악의 특징 중 하나라고 말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약간은 과한 자신감이 아닌가 싶지만 그래도 충분히 멋있다. 물론 뉘앙스 자체의 보존을 주목적으로 삼았고 사실 세련화를 완벽히 이뤄냈다고 보기는 힘들기에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그 음악의 수용반 경이 지역사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은 분명한 한계일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점도 이야기해 볼 수 있다. 타무수자가 남아프리카의 작곡가인 미셸 블레이크와 작업을 했을 때의 일이다. 미셸 블레이크는 여러모로 타무수자와 반대의 입장에 서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는 백인이다. 또한 토착 음악으로 초창기 음악교육을 받았던 타무수자와 달리 미셸 블레이크는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 등 서양음악 교육을 받았던 사람이다. 성인이 된 후에도 자신을 서양음악의 국제적 전통에 속해있는 코즈모폴리턴 작곡가로 여겼다. 그런 그가 아프리카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프로가 된 이후다. 일본의 1세대 현대음악가 토루 타케미츠는 독일로 건너가고 나서야 자신이 가진 일본적 뿌리를 깨닫게 되었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이와 비슷한 일이 미셸 블레이크에게도 일어났다. 그 역시 한 번도 의식해본 적 없지만 남아프리카라는 땅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 서 자신에게도 그것의 영향이 얼마간 미쳐있으며 이것으로 인해 유럽 출신의 작곡가들과 자신 사이에 차이가 생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후 그는 자신의 전자음악 작품에 아프리카 전통 악기 주자를 참여시키는 등 아프리카 음악의 요소들을 가져오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 그가 이러한 접목을 위한 하나의 레퍼런스로 참조한 대상이 바로 타무수자다. 둘이 나누었던 대담의 녹취록과 영상들은 둘의 협업이 어떠한 종류의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아프리카 음악의 뉘앙스를 보존하면서 서양음악적 세련성을 가미해보고자 했던 작곡가, 그리고 그가 이뤄놓은 것들을 뒤늦게 참조하게 된 코즈모폴리턴 작곡가, 이 둘 사이의 협업. 이것은 어쩌면 타무수자라는 작곡가가 음악사에 자기 흔적을 남기는 또 하나의 방식인 게 아닐까? 예전에 진은숙 작곡가가 이자람의 공연을 보고 감명을 받아 자신의 음악에 창을 집어넣고자 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당시 진은숙 작곡가는 이자람을 직접 만나기까지 하려 했었다고 한다. 이자람이라면 정통 국악을 하는 동시에 브레히트 연극을 판소리로 재해석하기도 하는, 그야말로 보통이 아닌 인물이다. 그리고 진은숙이라면 우리나라에서 현대음악으로 국제적 인정을 받은 몇 안 되는 작곡가중 한 명이다. 두 사람의 만남이 그래서 성사되었는지 아닌지, 그것은 모르겠지만 만일 둘이 만났다면 그것은 미셸 블레이크와 타무수자의 만남의 한국적 버전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확한 비교는 아니겠지만.

스티니안 타무수자라는 작곡가를 중심으로 하여 우간다, 나아가 아프리카의 클래식 작곡이라는 주제를 파편적으로 훑어보았다. 현대음악계에서 나름의 캐릭터를 바탕으로 성공한 작곡가들을 소개한다는 예토전생 시리즈의 지금까지 선정 기준과 이번 글의 주제는 다소 안 맞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른바 주류 음악 씬에 대한 영향력, 혹은 상업적인 차원에서의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가 만든 작품들이 미학적 측면에서 분명 어떤 독특성이 있고 그 독특성은 우리 음악계의 상황에 비추어 비교해볼 지점이 많은 것이라는 점에서 이 작곡가를 들여다보는 작업이 의미가 있었다 생각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당장에 어떻게 될 일은 아니지만. 길게 보며 벽돌을 하나씩 놓아야 하리라.

 

[예토전생]은 클래시안 노승주 기자가 다양한 작곡가들의이야기를 전달하는 코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