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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작곡가 이용범, "예술은 생각이나 마음을 표현하는 특수한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작곡가 이용범, "예술은 생각이나 마음을 표현하는 특수한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현승 기자
  • 승인 2019.12.10 1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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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안에 발견하지 못한 또 다른 정서나 감정을 찾아내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 작곡가 이용범

▲전민재ㆍ진솔ㆍ이용범(왼쪽부터)<br>
▲전민재ㆍ진솔ㆍ이용범(왼쪽부터)

국내에는 수많은 젊은 작곡가가 있다. 하지만 그들이 작곡가로서 건재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작품발표가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그러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르티제는 젊은 작곡가의 훌륭한 작품들이 널리 연주되기를 바라며 오케스트라 프로젝트 <한국을 빛낸 젊은 작곡가>를 기획했다.

한국 나이로 33세, 87년생 토끼띠 음악가 전민재ㆍ이용범ㆍ진솔이 이번 연주회를 위해 뜻을 모았다. 이들은 이번 무대를 통해 무엇을 관객들에게 호소하고 싶었을까? 이러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클래시안은 오늘 작곡가 이용범을 만나 그의 '삶'과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곡가 이용범

안녕하세요, 소개를 간단히 해주실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독일 라이프치히에 거주하고 있는 작곡가 이용범입니다. 현재 프리랜서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라이프치히 국립음대 작곡과 강사로 재직 중입니다.

어떤 질문을 좋아하실까요?
일상적인 질문부터 현대음악과 예술에 대한 질문 모두 좋아합니다.

이번에 발표하시는 작품에 관해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소리에 촉감이 있다면 어떨까. 촉감을 소리로 표현할 수 있다면 어떨까. 매끈한 촉감과 거친 촉감을 어떻게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보이는 소리에 대한 의문에서 앙상블 곡 Dépaysement(2018)과 첼로 독주곡 Erga(2017)를 작업했다면 이번에는 만져지는 소리에 대한 의문에서 Touch를 작업했습니다. 대상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시각, 청각과는 달리 촉각은 대상과의 거리를 없앱니다. 촉각은 즉각적이죠. 이 곡에서는 관객에게 소리가 촉각으로 경험되는 것을 의도했습니다. 슬라임 ASMR에서 과장된 소리로 전달되는 슬라임의 끈적한 촉감은 실제적인 경험이 됩니다. 소리가 만져지면 그 경험은 실재가 됩니다. 시각과 청각은 관찰자와 대상 사이에 공간이 필요하고 그렇게 대상과 벌어진 공간에는 대상과는 무관한 것들이 들어섭니다. 촉각은 이 공간을 없앱니다. 촉각을 통해 경험하는 소리가 펼쳐내는 배음의 연쇄를 들어보았으면 합니다.

음악적 동료로서 지휘자 진솔, 작곡가 전민재 그리고 친구로서 진솔, 전민재는 많이 다른가요? 혹시 다르다면 어떻게 다르신가요?
진솔 씨는 전민재 씨를 통해 연이 닿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가을 스튜디오 촬영 때 처음으로 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눴는데 굉장히 깨어있고 아직도 어린아이 같은 열정이 가득한 지휘자라는 인상을 받게 되어 반갑고 놀라웠습니다. 장르에 대한 편견이 없고 음악을 순수한 열정으로 대하는 이 시대의 귀한 지휘자입니다.
전민재 씨와의 인연은 벌써 11년째입니다. 처음 전민재 씨를 알게 되었을 때 한국에 이런 작곡가가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대학교 2학년 때인데 고전음악에 대한 이해와 현대음악에 대한 통찰이 너무 뛰어나서 개인적으로는 상당 기간 스스로 부끄러움을 갖고 공부에 열심히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전민재 씨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은 저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전민재 씨의 작품들이 이미 더 많은 것을 증명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전민재 씨의 음악적 방향은 저의 음악적 방향과 아주 다릅니다. 그런데 본질적인 부분에서는 서로의 작품과 음악적 생각에 깊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전민재 씨는 화성에 있어서 새로운 장을 연 작곡가라고 생각합니다. 장식이 많거나 복잡한 화성이 아니라 너무 투명해서 이 세상 물체가 아닌 것 같은 화성입니다. 작곡가로서 전민재 씨는 엄격하고 자기 비판적이면서도 놀랄 정도로 순수합니다. 동료로서 전민재 씨는 제게 밤하늘 별자리와 같은 존재입니다. 가장 어두울 때 방향을 짚어주는 소중한 동료입니다.

연세대학교 학사, 빈 국립 음대 석사를 졸업하시고 현재는 라이프치히 국립 음대에서 박사 과정 및 강사 활동을 펼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작곡 공부를 하시고 유럽에서 계속 활동하시면서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그 시간 동안 작곡가님의 작품은 어떻게 변화하셨나요?
조금 어렸을 때는 유행이나 사람들이 많이 하는 음악을 따라서 쓰려는 경향이 있었는데 공부하는 기간이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2016년에 처음으로 출판사와 계약하고 첫 공식 위촉 곡을 쓸 때부터는 유행이나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난 것 같습니다. 정신적으로 자유로워지고 나서 작업이 확실히 수월해졌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거나 과시하려는 악보나 음악을 쓰려 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는데 비엔나에서 공부를 끝낸 시기부터는 나 스스로가 이어폰을 귀에 꽂고 오늘 하루, 길을 다니며 몇 번이고 다시 듣고 싶은 음악을 만들자는 마음으로 작품을 쓰게 되었습니다. 상식적인 얘기인데 이게 오래 걸렸네요. 

오랜 기간 독일에 머무시면서 유럽과 한국에서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신다고 들었습니다. 최근에는 어떠한 작업을 하고 계시는가요? 그리고 앞으로는 어떠한 작업을 해보시고싶으신가요?
최근까지 오케스트라 곡 Touch를 지겹게 작업했고 작년부터 출강하고 있는 독일 라이프치히 국립음대 수업 내용을 매주 신경 써서 다듬는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멘델스존이 설립한 음악대학에서 멘델스존, 브람스, 슈만의 화성에 관해 얘기하는데 최대한 깊이 있는 내용을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싶어서 매 수업 되도록 정성을 다하고 있는 시기입니다. 수업내용에 충분한 깊이감이 생기고 패턴이 갖춰지고 나면 그때부터는 수업하는 게 아주 수월해지겠죠. 내년에는 두 곡의 실내악곡 신작을 써야 하고 2021년 2월에 몬트리올 국제 현대음악제에서 호르니스트 Gabriel Trottier에 의해 초연될 호른 협주곡을 작업해야 합니다. 내년 초부터 중순 사이에는 첼로 독주곡 Erga(2017), 오중주곡 A Little Night Music(2017), 호른과 일렉트로닉을 위한 Spoken Toughts(2018), 앙상블 곡 Dépaysement(2018), 오케스트라 곡 Touch(2019)가 비엔나 Doblinger 출판사에서 출판될 예정입니다. 

라이프치히 음대에서 강사로 학생들도 가르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이전까지 학생이시면서 작곡가로 활동하시는 것과 선생님이시면서 작곡가로 활동하시는 것에 있어서 달라진 점이 있으실까요?
일단 학생 때가 더 정신없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혼란스러운 상태였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빈 국립음대 졸업 즈음 공식적으로 위촉을 받아 첫 위촉 곡을 쓰고 나서 학생 신분을 벗어나 작업을 일로 하게 되니까 오히려 정신적으로는 편안합니다. 독일 라이프치히 음대에서 한 강의는 제게 의미가 깊은데,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학교고 또 멘델스존이 설립한 음대에서 멘데스존, 브람스, 슈만의 화성을 얘기해야 하는 데서 오는 무거운 책임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작곡가의 작품에 누가되는 소리를 하고 싶지 않고 또한 이 유서 깊은 음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최대한 깊이 있는 내용을 전달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수업을 준비하면서 멘델스존과 브람스의 덜 알려진 곡들 또한 알게 되고 공부하면서 스스로 많은 발전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젊은 작곡가분들께서 직접 남겨주신 질문을 조금 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작곡가님께서는 창작에 대한 욕구를 주로 어디서 얻으시나요?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싶은 욕구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매끈한 신형 아이패드가 나오면 소유하고 싶듯이 아름다운 음악을 실재하는 것으로 만들어서 소유하고 싶은 욕구도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다만 한 곡을 완성할 때마다 그 아름다움이 완전하게 만들어지지 않아서 또 다음 곡을 쓰고 하는 무한 루프 속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작곡가로서 '현대'음악을 해야 할까요, 아니면 현대 '음악'을 해야 할까요?라는 질문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동시대적인 감성'을 갖고서 '음악'을 해야겠죠. 도시가 커지고 기계가 들어서기 시작한 1800년대 중•후반 미술가들이 생전 처음 보는 빠르게 움직이는 기계와 점점 분주해지는 도시의 인상을 그려내면서 인상주의 화풍이 생겨나고, 그 당시 음악 또한 조성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여 드뷔시, 라벨과 같은 작곡가가 이전 시대와는 다른 음악을 만들어 냈듯이 말이죠. 우리가 쉽게 접하게 되는 현대음악은 1900년대 중반 세계대전 직후의 파괴된 정서에서 만들어진 음악이 많습니다. 음악사 책이나 학술지 등에 충분히 기록되었고 이미 연주가 많이 누적되어 노출 지수가 높으니까요. 일반 대중에게 현대음악 하면 펜데레츠키의 '히로시마 희생자에게 바치는 애가'가 높은 확률로 떠오를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음악은 1960년에 쓰인 음악으로 벌써 60년 전 음악입니다. 전쟁을 경험해 보지 못한 세대가 공감하기에는 어려운 특수한 정서가 반영된 음악이고요. 2019년 오늘은 오늘의 감성을 바탕으로 한 음악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어제오늘 작곡된 곡들의 연주가 한 해 두 해 누적되고 책에 기록되는 등 제대로 유통이 되려면 또 긴 시간이 지나야겠죠. 현대음악에 유난한 관심을 두고 있지 않는 분들이 '현대'와 '음악'이 계속 분리되어 인식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하게 되는 게 저로서는 안타까운 현실로 여겨집니다. 

작곡가님의 작업 과정이 너무 궁금합니다!
매일의 일상에서 또 음악 외적으로 얻는 아이디어가 많고 실질적으로 음표를 오선지에 옮기는 작업은 제한된 시간 안에 속도감 있게 집중적으로 이뤄집니다. 매일 5시간씩 50마디를 꼭 써내는 작업 스타일은 아니에요. 실제로 어쩌다가 그렇게 작업을 하면 그 결과물들이 나중에 취소되는 경우가 많고요. 매번 자신도 놀라지만 마감은 항상 어느 정도의 기적을 일으킵니다. 

혹시 슬럼프를 겪게 되시면 주로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좇고자 하는 이상이 과해져 자신을 옥죌 때 슬럼프가 오기도 해요. 매일 5시간씩 앉아는 있는데 한마디도 못 쓰는 거죠. 작곡할 때 “이번 곡은 꼭 이렇게 써야 해” 하는 강박감이 과해서 진척이 너무 없으면 마음 단단히 먹고 뒤집어서 평소에 안 하던 방식으로 작업을 해 마감하는 방법도 쓰곤 해요. 그 외에도 좋은 음악을 심도 있게 분석하거나 책을 집중적으로 읽는 것도 슬럼프 극복에 큰 도움이 됩니다. 

작곡가 이용범에게 예술이란 무엇인가요?
예술은 생각이나 마음을 표현하는 특수한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원적•사전적 의미이기도 하죠. 그런데 예술이 일반 기술과 다른 점은 그렇게 표현해낸 결과물이 일정 부분 혹은 상당 부분 먹고사는 실용적인 문제에서 벗어난 내용을 포함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비실용성을 띈다고 봅니다. 신발에 날개를 달았는데 날개가 사실 쓸모가 있어서 달아 놓은 게 아니라면 그 부분이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단, 날개 단 신발에 얼마만큼의 예술적 가치가 매겨지는가는 사회적 문화적 지역적 작용에 따라 이뤄지니까 다른 문제죠. 작게 보면 예술은 인간의 삶에 장식처럼 느껴지는데, 그냥 앉기 위해 만든 의자의 형태가 다양하듯이 장식은 사실 인간 삶의 본질적인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장식적인, 비실용적인 내용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 혹은 향유하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으로서 누구나 갖고 있고 그걸 표현하는 행위나 기술을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는 결과물이 예술작품인 거죠. 

작곡가로서 음악을 통해 구현하시고 싶은 것이 있으신가요?
존 케이지와 그 세대 여러 플럭서스 작곡가가 주창한 “모든 소리는 음악이다.”, “행위도 음악이다”라는 생각에 저는 부분적으로만 동의합니다. 음악은 음악이 줄 수 있는 감동과 또한 음악이기 때문에 추구할 수 있는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음악에 인간, 자연, 신앙에 대해 제가 느끼는 따뜻함을 남기고 싶습니다. 보로딘의 음악에서 그가 인간에 대해 느끼는 따뜻함이 전해지고 말러의 음악에서는 자연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바흐의 음악에서는 신앙이 경험되고 느껴지듯 이요. 거창한 목표가 아니더라도 제 음악이 감상자에게 너무 어렵지 않은 감동을 줬으면 합니다. 

▲작곡가 이용범

현재로서 앞으로의 음악가로서 또는 인간으로서 어떠한 사람이 되고 싶은가요?
음악으로 표현하고 그려낼 수 있는 능력을 꾸준히 발전시키고 탐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또 아직 제 안에 아직 발견하지 못한 또 다른 정서나 감정들을 찾아내고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연주회를 찾아오시는 관객에게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따로 있으실까요?
귀한 시간 내어 연주회를 찾아주신 관객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혹시나 현대음악의 실험적이고 아카데믹한 부분 때문에 선입견을 품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이번 연주를 통해 그 선입견이 조금이나마 깨어지는 경험을 하셨으면 합니다. 


한편, 작곡가 이용범에 관한 더욱 자세한 정보는 아래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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