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토전생[穢土転生] 2-6 : 존 아담스(John Adams) 2부
상태바
예토전생[穢土転生] 2-6 : 존 아담스(John Adams) 2부
  • 노승주 기자
  • 승인 2020.03.02 09: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예토전생 : 존 아담스 1부 읽으러 가기

▲작곡가 존 아담스(John Adams) ⓒMusacchio, Ianniello &amp; Pasqualini<br>
▲작곡가 존 아담스(John Adams) ⓒMusacchio, Ianniello &amp; Pasqualini

생생하고 살아있는 음악에 대한 그의 추구, 지휘자로서 뿐 아니라 자신이 작곡한 작품조차 생생하고 살아있는 음향의 형태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그의 강렬한 열망은 그의 음악적 커리어가 전문 클라리넷 연주자로 시작했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바가 클 것이다. 즉 처음부터 악보라는 수단을 통해 음악을 접했던 벤트 쇠렌센(Bent Sørensen)과 같은 류의 작곡가들과는 달리 그에게 있어 음악이란 본래부터 연주라는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었으며 현장에서 집중과 열의를 통해 만들어내는 하나의 공연물이었다. 음악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오랜 시간에 걸쳐 "직관"이라는 형태로 그의 정신 안에 깊이 내재되었다. 그는 말한다. "어린 나이에 악기를 마스터한 것이 내 이후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확신하고 있다.... 뉴잉글랜드 전역을 돌아다니며 클라리넷을 연주했던 10대 시절 동안 나는 예술적 직관과 자신감을 얻었다."

직관을 신뢰하는 음악, 직관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감각적 소재들을 짜 맞춰가는 방식의 음악은 우리로 하여금 자연스레 그에게 유명세를 가져다준 미니멀리즘 스타일의 음악들을 떠오르게 한다. 실제로 유튜브 등에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프리지안 게이트 등의 미니멀리즘 작품들이 언제나 상위권에 뜬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닉슨 인 차이나> 역시 미니멀리즘 기법을 적극 응용한 곡이다. 그러나 그의 음악을 미니멀리즘이라는 한 장르의 프레임 안에서만 판단하려 한다면 그것은 큰 실수이자 오판이다. 그의 음악 스타일은 그러한 작품들을 만들던 초기로부터 무척 큰 폭으로 변해왔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미니멀리즘의 많은 측면들을 사랑한다. 그러나 나는 그 기법이 감정 표현 측면에서 너무 단색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만의 것인 동시에 감정 표현 측면에서 좀 더 유동적인 언어를 만들고자 했다... 그동안 나는 더 다양하고 더 조화로운 언어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가 생각하기에 그러한 어법의 변화 혹은 발전은 그 자신이 그 순간에 만들고 있는 작품 그 자체의 요구에 의해 이루어진다. 가령 초기작인 <닉슨 인 차이나>에 미니멀리즘 기법이 이용된 것 역시 그 기법이 오페라의 세부적 맥락들과 얽히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어떤 아이러니한 효과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990년부터 91년 사이에 작곡한 오페라 <클링호퍼의 죽음>이 큰 변곡점이었다. 이 작품 이후 나는 더 진지하고 덜 아이러니한 언어를 찾아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자신의 안에 정착한 하나의 언어를 끝까지 고수하는 작곡가들이 있다. 이런 작곡가들에게 자신의 언어는 자신의 영혼에 꼭 맞는 육체와 같다. 반면 그러한 방식은 근본적으로 자기 반복에 불과하며 작곡가의 소명은 계속해서 자기 혁신을 해내는 것이라고, 그리하여 입체적인 차원에서의 자기 자신을 더 잘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믿는 작곡가들도 있다. 이런 스타일의 대표적인 작곡가들이 아마 진은숙과 존 아담스 같은 이들이리라. 

이들이 지속적으로 자기 혁신을 해나가는 데에는 자신에게 자신이 입고 있는 기법이라는 옷을 바꾸어도 변하지 않는 어떤 확고한 내적 목소리가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담스는 이것을 일종의 음악적 DNA에 비유한다. 즉 한 인간이 자라면서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변해가지만 기본적으로 그 사람을 구성하는 핵심 원리들은 모두 그 사람이 타고난 DNA로부터 나오듯 한 명의 음악가 역시 그 음악가가 성장하며 얻은 음악적 경험과 훈련으로 변화하고 발전하지만 그 음악가의 안에 내재되어있는 핵심적 목소리는 "거의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스트라빈스키를 보자. 그의 초기 음악과 후기 음악은 거의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분명 그 기저에는 어떤 설명할 수 없는 정체성이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나는 확실히 내 음악이 내가 가지고 있는 리듬적 에너지와 내가 가진 어떤 특정한 조화로운 근본 언어를 통해 나온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정체성은 그의 안에 확고히 내재한 것이다. 그의 기법은 그가 즐거이 개발해 나가는, 자유로이 갈아입을 수 있는 옷이다. 이런 상황에서 존 아담스가 외려 어려워하고 돌파구를 찾아야겠다고 느끼는 측면은 다름 아닌 악기 법에 대한 것이다. 현악기를 위한 곡, 그리고 그중에서도 특히 바이올린 협주곡을 잘 쓰는 것의 어려움을 그는 자주 토로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아마 바이올린 협주곡을 쓰는 것인 것 같다. 그것 현악 4중주를 쓰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나는 오페라도 쓸 수 있다. 그건 품이 많이 드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그것조차 바이올린 협주곡을 쓰는 것처럼 나에게 답답함을 주지는 않는다. 그 악기는 너무나 나의 직관에 반한다. 내 말은 그렇게 그 악기를 잡고 그 손가락이 어디로 가야 할지 예측하는 게 나에겐 너무 어렵다는 의미다. 집에 작은 템플릿을 만들어 붙여놨지만 여전히 내 상상 속에선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던 것들이 완전히 어색하고 이상한 포지션이었던 것으로 판명 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그가 지휘자로 일하면서 가장 깊게 감명을 받는 곡들 역시 이러한 악기법적 측면에서의 완전성을 가진 곡들인 경우가 많다. 다음은 그가 코른골트 바이올린 협주곡에 대해서 말한 것이다. "나는 이 곡에 매우 큰 감명을 받았다. 바이올린 서법이 무척 자연스러웠고 소리면에서도 아주 훌륭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모든 측면에서 그는 기막힌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내가 쓰는 바이올린 프레이즈 들은 어딘가 꽉 막혀있고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느낌이 자꾸 든다. 나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것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바이올리니스트들과 교류해야 한다."

이러한 그의 악기법적 측면에 대한 관심은 비단 클래식 주법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훌륭한 재즈 즉흥 연주자가 가진 화음의 변화에 대한 기민한 반응능력을 개발할 시간이 나에겐 없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재즈에 대해 큰 애정과 관심을 누차 밝혀온 존 아담스이니만큼 그의 작품에 있어 재즈적 서법에 대한 차용도 많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특히나 그의 색소폰 협주곡은 그 이름에서부터 자연스레 소위 'Jazzy'한 느낌을 기대하게 만든다. 실제 그는 이 협주곡을 쓰면서 자신의 머릿속에 기본 전제로 깔려있던 소리는 완전히 재즈식 색소폰 연주법이었으며 사실 자신은 색소폰의 클래식적 연주법에 대해 어떤 경계선적 불쾌감을 느낀다고 말한 바 있다. "나는 프랑스 음악계에서 개발된 색소폰 연주법, 즉 넓은 간격의 비브라토를 바탕으로 연주하는 클래식 색소폰 연주법에 대해 거의 직감적으로 부정적인 느낌을 받는다."... "<시티 누아르>에서 내가 가장 크게 걱정했던 것은 연주자가 그 끔찍한 클래식 스타일로 연주를 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초연자였던 팀에게 나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긴 했지만 매우 엄격한 고전적 전통 속에서 훈련을 받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클래식의 어법이나 클래식이 고수해온 스타일 전통을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것은 아니다. 실제 그는 시대가 지날수록 작곡가에게 있어 기술의 이해와 훈련에 대한 의식이 점차 느슨해져 가는 흐름(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해온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그가 생각하기에 의대나 로스쿨을 다니는 학생들은 직업 현장에서 자신들이 이용해야 할 도구들을 철저하게 알기 위해서 무척 노력을 하고 학교 역시 그들이 그런 것들을 빠짐없이 배우도록 커리큘럼을 세우지만 현재 예술대학들은 실제적인 도구를 학습시키고 시설을 확충하는 것보다 학생들이 사회문제들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교양 수업 위주로 커리큘럼을 바꾸는 데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나는 미국 문화를 사랑한다. 그러나 나는 한편으로 이 나라가 반 지성주의의 흐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려한다. 나는 듣는 방법을 배우고 실제적인 귀를 발달시키는 것과 같은 기초적 학습들이 예술가로서 쌓아야 할 경험의 가장 기초단계에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그는 젊은이들이 걸어가야 할 음악적 환경이 자신의 시대와는 매우 달라졌고 그래서 자신에게 유효해 보였던 전략이 젊은이들에게는 통하지 않을 수 있으리라는 것, 그리고 젊은이들이 하고 있는 작업은 그 자신 역시 온전히 새로운 눈으로 놀라움의 마음을 가지고서 봐야 한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그가 작곡가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하던 시대는 다름슈타트라는 명확한 예술계의 주류가 자유로운 흐름으로 뻗어가고자 하는 작곡가들의 열망을 모두 흡수하던 압제적인 시대였다. "여러분 각자가 자신의 목소리와 자신에게 맞는 사람들을 찾으려고 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예술에는 옳은 길과 잘못된 길이 있으며 옳은 방법은 곧 다름슈타트라고 소리를 지르면 겁을 먹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외려 최근에 들어 젊은 작곡가들 가운데 50년대와 60년대 아방가르드 음악의 엄청난 에너지와 복잡성에서 흥미를 발견하고 자진하여 그로부터 영향을 받으려 하는 이들이 나오고 있는 것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자신의 시대엔 복종하느냐, 거부하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문제가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겐 그저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되었음을, 젊은이들은 심지어 그 자신은 저항하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긍정적인 측면들을 발견해 발전시키고 있음을 보고 놀란 것이다. 그는 이제 판 자체가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이제 진정으로 모든 흐름이 가능하다." "어느 정도 싱거우면서도 무척 세심한 감각으로 작곡된 이른바 '청중 친화적' 오케스트라 작품을 써서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작곡가들도 있다. 록과 인디음악에 깊은 영향을 받고 있는 작곡가들도 있다. 어떤 작곡가들은 현대음악이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기 위한 열쇠가 과거의 작품들에 있다고 믿고 그것을 샅샅이 뒤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 모두 그들의 작업에 대해 진지하고 고마운 추종자들을 얻고 있다."

어쩌면 그가 커리어를 시작한 젊은 시절부터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생각, 그리고 70이 넘은 이 나이까지 항상 하고 싶었던 말은 바로 이것이었을지 모르겠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그 '고전'이라는 단어를 그냥 잊어버리기로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모든 게 정말 쉬워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또한 이렇게 말한다. "브람스는 그의 마지막 작품을 공개적으로 발표하고 작곡에서 은퇴했다. 그러나 그건 나에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나에게 그건 마치 '난 다음 주부터 숨을 쉬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나는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까지 이것을 할 뿐이다."

노승주 기자
노승주 기자

독자와의 소통을 통해 더 나은 내일을 만들겠습니다.

-최신기사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