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토전생[穢土転生] 2-7 : 토시오 호소카와(Toshio Hosokawa)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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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토전생[穢土転生] 2-7 : 토시오 호소카와(Toshio Hosokawa) 1부
  • 노승주 기자
  • 승인 2020.03.24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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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시오 호소카와(Toshio Hosokawa) ⓒKazIshikawa

토시오 호소카와. 그의 음악은 그 자신을 닮았다. 그는 말을 할 때에도 절제된 손동작과 표정을 통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 자신의 생각을 지극히 안전하게 전달한다. 그라는 인물 그 자체가 그의 예술활동의 특징에 강하게 결부되어 있다. 그는 오래도록 이어져온 수도자적 예술가, 욕심 없이 정직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청렴한 예술가의 캐릭터에 부합한다.

그의 음악은 소리, 그리고 침묵이라는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그의 음악 안에서는 소리가 침묵 속에서 불현듯 나타나고 사라진다. 이런 특징으로 인해 그의 음악은 지극히 '정신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이 인상은 그 자신이 가진 섬세하고(혹은 꼼꼼하고) 기술적으로 완벽히 숙달된 서법 위에 쌓아 올려진 것이다. 그리고 그 정신적이고 조용한, 그러나 때로는 가장 큰 소리를 내는 그 음악은 명백히 어떤 서정성을 내포하고 있다.

근래에 들어 그는 사회적 이슈를 음악에 적극 접목시키는 모습으로도 눈에 띄었다. 가령 그의 오페라 <바다에서 온 여인>이 있다. 난민이라는, 이 작품이 작곡되던 당시 유럽에서 한창 논의되던 사회적 주제가 차용된 이 작품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단지 유럽이 아닌 전 세계의 문제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가 믿기로, 예술가의 자아는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며 따라서 예술가가 세계를 반영하는 것은 의도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토시오 호소카와는 자신을 어떤 작곡가로 여기고, 또 정의하고 있는가? 때로 한 개인을 둘러싼 주변의 역사적, 환경적 맥락을 바탕으로 그 개인을 비로소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그가 스스로를 어떤 작곡가로 여기느냐는 질문은 그 자신이 스스로를 계보학적으로 어떤 위치 있는 작곡가라고 생각하는지, 나아가 자신을 지지해주는 뿌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서 크게 멀리 있지 않을 것이다. 

"내가 어디서 왔느냐, 이렇게 묻는다면 그 대답은 물론 일본이 될 것이다." 한 명의 서양음악가로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이러니하다. 그가 만드는 음악의 정신은 일본에서 온 것이라 할지라도 그 음악의 몸체는 분명 서양적인 것이다. 비록 서구 음악이 국제 음악으로서의 인정을 받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의 모든 요소 하나하나가 서양음악의 전통으로부터 비롯되어 나온 것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라는 음악가가 어디에서부터 나왔느냐,라고 묻는다면 자신은 일본에서 왔다고, 일본의 음악이라는 줄기에서 뻗어 나온 가지라고 대답하겠다 한다. 그렇다면 그는 정확히 어떤 방식을 통해 서양음악을 하고 있는 자신을 일본 음악가로 위치시키고 있는가? 그는 어떤 견지에서 자신을 그렇게 인식하는가?

"이것을 말해야 할 것 같은데, 일본에는 그 서양음악의 전통이 이미 150년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일본인들의 삶에 매우 풍부한 서양음악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세계의 전제로서, 메이지 이전의 시대 아악과 노, 피리를 비롯한 에도 시대의 음악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러한 일본 고래의 전통적인 음악으로부터의 연결로, 즉 메이지 이후로 서양과 만난 후의 일본의 음악가로서 작곡을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제아미(世阿弥, 1363 ~ 1443, 일본의 전통 가무극인 노를 완성한 예능인), 지카마쓰 몬자에몬(近松 門左衛門 1653 ~ 1725, 일본의 가부키 극작가)은 제 뿌리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후에 일본 작곡가인 타케미츠 토루 씨의 음악 사상을 배웠고 그 일련의 흐름 속에서 작곡을 한다는 것입니다." 제아미와 지카마쓰 몬자에몬의 시대 이후, 즉 메이지 이후 서구의 영향을 받은 일본의 서양 음악계의 작곡가.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도 토루 타케미츠의 영향을 받은 작곡가. 이것이 그가 생각하는 자신의 위치다. 그는 바흐와 베토벤의 전통에 속한 아방가르드 음악가가 아니다.

"100퍼센트 알고 있네요.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어디에 서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나는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구 유럽 서양 음악계에서, 그는 또한 잘 팔리는 음악가이기도 하다. "유럽에는 없는 것을 내가 만들고 있다고 그들이 생각하니까 내게 부탁해주는 것이겠죠." 그는 그 요구에 응답해줄 다름이다. "현재의 유럽에서는, 비 유럽권에서 온 작곡가들이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네요. 기존 유럽의 음악이 어딘가 꽉 막혀있기 때문인 측면도 있죠. 거기에 제가 무엇인가를 줄 수 있을지, 그것을 항상 생각합니다."

그는 '무의 예술'이라는 것에 대해서 말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라는 예술에 대한 오랜 스테레오 타입적 이미지와 상당히 상반되어 보이는 이 말은 그가 기독교 문화를 중심으로 한 서구 예술과 일본의 예술을 대비시키며 사용한 말이다. "서구사회의 기독교적 음악에선 바흐든 부르크너든 소리의 건축이라는 미학을 지향하지요. 그 건축물은 아마 신의 영원한 빛이 비쳐 들어올 수 있는 거대한 소리의 교회일 것입니다." 반면 그 토시오 호소카와 그 자신의 음악에서 소리는 문득 생성되었다가 이윽고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웅장하게 지어진 하나의 소리 건축물에서 나오지 않고 외려 무상하게 태어난 소리가 역시나 무상하게 사라지는 그 찰나의 순간에 나온다. "하나의 선이 태어나면 그것은 이윽고 사라집니다. 소멸하는 것은 아름답습니다." 

형식적, 구성적 측면에서도 이러한 그의 미학은 잘 드러난다. "제시된 어떤 것이 미묘하게 변화하는 형식이라는 측면에서, 이것을 일종의 변주곡 형식이라도 말하는 것도 가능은 하겠지요. 하지만 제가 좀 더 집중하는 것은 순간순간 하나의 소리가 어떻게 미묘하게 변화해가는지, 그 변모의 양상이며 제가 만들고자 하는 음악은 변모해가는 음악입니다." 

그리고 이런 변모의 키워드는 그가 생각하는 동양적 사고방식의 핵심이기도 하다. 하나의 주제가 제시되고 그것에 대비되는 또 다른 주제가 제시되어 그 둘의 결합으로 전개부가 이루어지는 소나타 형식이 변증법적인 서양인들의 사고방식을 보여준다면, 동양인의 사고방식은 이와 달라서 하나의 최초 모티브가 '발전'이 아닌 변화되어 어느샌가 원래의 모습과 다른 무언가가 되는 것이다.

자연히 이러한 호소카와 음악의 미학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무언가가 쓰여있지 않은 공간, 즉 여백의 아름다움이다. "서예를 할 때를 보면 선을 그린 곳보다 그리지 않은 곳이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이는 결과물의 미학적 측면에서 뿐 아니라 작자가 그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의식하느냐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이것을 의식하지 않고 선을 그으면 선에 생명력이 부여되지 않습니다. 여백에 대한 사유가 힘 있는 선을 만들어냅니다. 강한 소리를 위해서는 강한 침묵이 필요한 것이죠." 이러한 이야기를 할 때 그가 자주 취하는 어떤 모션이 있다. 그것은 공중에서 반원 모양의 곡선을 그린 뒤 손뼉을 쳐 소리를 내는 동작이다. 호소카와는 말한다. "당신이 귀로 들을 수 없는 더 긴 지점들이 있습니다. 귀를 자극하는 부분은 소리겠지만 나머지 영역에 존재하는 침묵도 소리 그 자체만큼 중요합니다." 소리, 형상, 선은 전체 운동에 한 부분일 뿐인 것이다. "저에게 음악은 그런 것입니다. 실제 연주되는 것 밖에는 수많은 움직임의 맥락이 존재합니다."

이런 견지에서 생각해보자면 서로를 위해 상보적으로 존재하는 무와 유는 그리 명확히 구분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발화되는 소리 그 자체와 그 소리가 위치하는 배경으로서의 자연 공명은 한데 혼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노이즈'라는 단어가 그리 좋은 뉘앙스는 아닐지 모르겠네요. 유럽인들은 '노이즈'와 '뮤지컬 사운드'를 명확히 구분합니다. 그들에게 '노이즈'는 '뮤지컬 사운드'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인들에게는 이것이 조금 다릅니다. 토루 타케미츠는 이렇게 썼습니다. '샤쿠하치 연주자가 만들어내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바람이 썩은 대나무를 때릴 때 나는 소리와 같다.'" 이것은 동시에 토시오 호소카와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소리의 모습이며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음악의 모습이다. 

한 가지 특기할만한 점은 이처럼 전통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그이지만 전통 악기를 이용해서 곡을 쓴 적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그는 언제나 서양 오케스트라의 영역 안에서 무언가를 하려고 했다. 이것은 아마 재료로서의 전통과 시스템으로서 전통이 가진 차이점 때문일 것이다. "일본의 전통 오케스트라라고 할 수 있는 아악 편성에서는 언제나 완성된 고전작품의 연주가 중심이 됩니다. 제약이 매우 심하죠. 새로운 것을 할 여지가 그다지 없습니다." 그에 비하면 현대 서양의 오케스트라는 역설적으로 풍부한 가능성, 풍부한 여지를 지니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현대의 서양 전통음악이 확보한 가장 큰 자산 일지 모른다. 자율성 말이다. "그것은 저에게 선의 힘이라던지 공간에 대한 의식과 같은 개념을 적용해 볼 풍부한 팔레트를 제공합니다."

그가 추구하는 것이 어디까지나 서양악기가 가진 팔레트를 가지고 구현한 동양적 아름다움, 즉 일종의 하이퍼-인스트루먼트 이기에 역설적으로 그가 진정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예술적 이상은 퉁소와 같은 전통 악기로는 실현될 수 없다. 음역대가 더 넓고 더 많은 다양성을 허용하는 플루트 같은 악기 라야 그가 하고자 하는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유럽의 연필이나 펜은 가늘고 컨트롤된 선을 그리는데 특화되어 있지요. 반면 모필의 경우 털의 움직임 자체가 우연에 맡겨지는 부분이 많고 때문에 필자의 붓놀림은 날아가는 듯한 형상을 취하게 되죠. 음악에서, 저는 많은 장식음이나 비브라토 등을 통해 이것을 응용합니다. 오케스트라에서는 현악기 연주자가 다양한 소리를 내게 해서 각각 미묘하게 다르지만 함께 움직이도록 하지요. 현악기와는 성격이 다른 목관 군이나 금관 군이 시간차를 두고 현악기를 모방하도록 하기도 하고 긴 휴지기를 둔 뒤 공간에 점을 찍듯이 펑하고 터트리기도 합니다. 이런 이미지들을 바탕으로 작곡을 하죠."

2부에 계속...

노승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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