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토전생[穢土転生] 2-7 : 토시오 호소카와(Toshio Hosokawa) 2부
상태바
예토전생[穢土転生] 2-7 : 토시오 호소카와(Toshio Hosokawa) 2부
  • 노승주 기자
  • 승인 2020.04.16 10: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토시오 호소카와(Toshio Hosokawa) ⓒKazIshikawa<br>
▲토시오 호소카와(Toshio Hosokawa) ⓒKazIshikawa<br>

앞서 말했듯 그는 오페라 장르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전통 음악, 전통 미학에 대한 그의 관심이 여기서도 다시 한번 드러난다. 일본의 전통 극인 ‘노’의 서법을 오페라에 차용할뿐 아니라 나아가 실제 노 가수에게 오페라의 배역을 맡긴 것이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바다에서 온 여인>이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다. 이 작품을 초연한 노 가수 나와타 아오키는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연기하는 입장에서,  이인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호소카와 선생이 쓴 것을 따라 노래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흥미로운 이야기다. 전통 노의 경우, 기본적으로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극 예술이기에 가창의 영역, 다시말해 선율을 만들고 부르는 영역에서는 가수의 재량이 폭넓게 허용된다. 반면 오페라로 차용된 노에서는 악보에 기보 된 대로 연주하는 것이 필요했으리라. 이것이 노 가수로서 쉽지 않은 일이었다는 이야기다. 그녀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노의 그런 부분을 작곡가 분들은 ‘슈프레히슈티메’(말하듯 노래하는 기법) 같다고 재미있어했다. 나로서는 쓰인 악보대로 부르고 오케스트라와 공연한다는 것이 꽤 큰 도전이었다.”

호소카와 자신에 따르면, 오페라와 같은 극음악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이야기와 노래가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고 믿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통적으로 유럽에는 이야기와 노래가 있고, 그것들이 결합된 형태로 향유되어 왔다. 이는 아마 일본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일 것이다.” 여기서 호소카와가 말하는 ‘이야기와 노래가 결합된 형태의 예술 향유’란 슈베르트와 그의 친구들의 사교모임인 ‘슈베르티아데’ 같은 것이다. 시인이 시를 낭독하고 음악가가 그것을 노래로 만들었던 당시의 살롱 음악문화 말이다. “그 뒤, 20세기 초 아널드 쇤베르크가 등장하고 그는 말과 노래의 중간적인 것을 가지고 음악을 만들었다. 나와타 선생님 같은 분은, 분명 말 자체에 주목하기 때문에 음악이 오히려 방해가 될지도 모르지만(웃음), 나는 역시 시를 듣는 것 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할까, 음악을 통해서 전신이 도취해, 그 진동에 의해서 다른 분들과도 연결되는, 음악으로 결부되는 그 순간을 목표로 하고있다.”

진동에 의하여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음악으로 결부되는 순간. 이것은 그의 음악 미학, 예술 미학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이기도하다. 그리고 이러한 키워드는 필연적으로 그의 자연에 대한 생각과 연결된다. “나의 작품에는 언제나 자연에 대한 것, 자연이 가지고 있는 은혜가 테마로 되어있다. 나 자신의 근저에도 언제나 자연의 울림이 있다.” 이러한 테마를 볼 수 있는 대표적 작품이 바로 오페라 <솔바람>인데, 이 작품 속에선 솔바람이라는 여인에게 자연 그 자체가 빙의해 들어온다. 그리고 그것은 솔바람과도 같은 울림이 되고 최종적으로 그 울림은 영혼의 정화를 향해 나아간다. “두 사람은 노래가 되고 소리가 되는 것이다. 인간의 육체가 섞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소리는 섞이기 쉽다. 그렇게 하나가 되어 엑스터시에 이르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호소카와의 자연미학이 ‘초월적 방법을 통한 소통 가능성에 대한 탐구’를 지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이 서로를 이해하는 게 어려운 만큼 소통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그가 이야기한 것처럼 ‘인간의 육체가 섞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벽 앞에서 그는 영적 방식, 자연적 방식, 초월적 방식이라는 제3의 길을 모색해 들어가게 된 것이 아닐까. “나는 예술에는 무속신앙적인 것이 있다고 본다. 또, 연주가라는 것은 무당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솔바람과 마을비 또한 무당과 같은 존재이며, 보통 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과 교신하여 이승과 저승을 잇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보이지 않는 것을 두 자매는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연이라는 것이 항상 그렇게 초월적으로 아름답기만 한가? 결코 그렇지 않다. 자연은 초월적 아름다움으로 축성될 수 있음과 동시에 초월적 폭력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호소카와는 누구보다 이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자연에는 물론 폭력과 두려움 같은 측면도 있다.” 그가 이점을 분명히 깨닫게 된 사건이 있었다. “한때, 내게 자연은 그야말로 아름답기만 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동일본 대지진을 경험한 후에 바뀌었다. "그때, 자연은 두려움이었다.” 동일본 대지진은 2011년 3월 11일, 그의 오페라 <솔바람>의 세계 초연 직전에 일어났다. 실제로 이 오페라의 초연을 위한 연습 당시 일본에서의 해일과 원전 사고소식으로 인해 베를린의 연습 현장은 상당히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이 작품은 바다 옆이 무대로 설정되어 있어, 작품의 처음에 파도 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베를린 연습장에서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누구나 쓰나미가 생각나 연습을 중단해야 했다. 연출 플랜을 모두 바꿔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지만 결국엔 바꾸지 않았다. 그때 일은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

일본적 소재와 미학, 일본의 전통 극에서 가져온 이야기 등을 적극적으로 오페라에 이용하는 그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일본어로 오페라를 쓴 적은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은 특기할만하다. 물론 이는 그의 오페라가 주로 공연되는 곳이 유럽(특히 독일)인 탓이 크리라. 그러나 그는 이에 대해 한 가지를 더 이야기한다. “현대 일본어를 오페라로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현대의 일본어를 음악화하는 것은 어렵다.” 어째서일까? “일본어는 상대를 배려하여 사용하는 말이기 때문에, 대본으로 해 버리면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말까지 말해 버리게 된다. 때문에 노래가 되기 힘들다.”여기서 ‘노래가 되기 힘들다’는 말에 주목해보자. 그가 말하는 노래란 아마 서구적 형식의 노래, 이른바 멜로디일 것이다. 서구적 음악, 멜로디는 서구의 언어와 함께 자라난 서구적 몸체일테다. 그리고 서구적 몸체의 모국어는 유럽의 언어인 것이다. 서구적 몸에 일본어를 결합시키는 것, 그에게 이것은 아직 어려운 일이다. “지금으로선 도전할 수 없다. 노를 위한 대본이라면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노의 대본에는 그 나름의 폼이 있어, 하나의 말이 다의적이고 간결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호소카와, 그의 몸은 어디까지나 전통에 발을 붙이고 있다. 이는 그가 말한 바와 같이 제아미의 전통 극에서 시작하여 토루 타케미츠로 뻗어간 일본 예술 음악(혹은 일본에 정착한 서구 예술 음악)의 전통이다. 그러나 이러한 몸을 가지고서, 그는 현시대의 감각, 현시대의 영혼을 건드리는 작품을 만들고자 한다. 그러한 목표는 단지 어떤 이념, 어떤 도그마에 기탁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니리라. 또한 단지 새롭고 신기한 것을 만든다고 성취될 수 있는 것 역시 아니리라. 나름의 오리지널리티가 거기엔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면 호소카와는 오리지널리티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는가? 그건 그의 음악을 듣고 각자가 직관적으로 판단할 문제이지 여기서 글로서 설명할 것은 아니리라고 본다. 독자 여러분께서 직접 판단하시길. 혹시 나의 견해를 묻는다면 주저 없이 ‘그렇다’고 답하겠지만.

한 가지 더, 그는 예술가의 사회참여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가진 예술가이기도 하다. 사실 그의 생각은 거기서 한발짝 더 나아가 ‘예술은 본질적으로 사회참여적인 것’이라는 것에 더 가까이 있다. “세상은 다변하고 예술은 세상의 일부다. 현대는 노이즈로 가득 찬 격동의 시대로 국제적인 마찰이나 충돌이 매일 있다. 예술가는 베토벤이나 쇼팽이나 슈만의 시대에는 표현할 수 없었던, 현시대인이 느끼는 기쁨이나 슬픔이나 괴로움, 그러한 것을 자신이 가능한 방식으로, 자신에게 맞는 표현 수단으로 표현할 뿐이다. 그러한 감정은 현시대의 작곡가 자신들의 마음속에 이미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맞는 방식, 그에게는 그에게 맞는 방식이 있었으며 그는 그것을 찾아내 그 방식으로 작곡을 하고 있다. 나름대로 말이다. 무의식의 세계나 보이지 않는 세상 등 그가 즐겨 다루는 소재들은 지적이기보단 감각적이고, 신비주의적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런 것에 흥미가 없는 사람에게는 내 작품의 울림이 전해지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자연, 영성, 신비 등을 다루는 그의 테마는 혹 근대를 넘어 전근대로의 회귀하는 낡은 테마인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그것은 현대인의 감성에 직접 호소하기엔 무리인 것이 아닌가? 이에 대한 호소카와의 대답은 전자에 대해선 ‘그럴지도’, 후자에 대해선 단호히 ‘No’다. “현대인도 몽환능과 같은, 꿈과 현실이 결합된 세계를 어딘가에서 찾고 있다고 생각한다. 음악이라는 드라마는 그것을 제공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오페라라는 것은 꿈이나 희망이나 절망과 결합되어, 그런 것을 찾아 사람들은 극장에 모여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는 현대인에게 있어서 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인기가 있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니겠나. 그의 작품 속에는 우물 속으로 들어가거나 벽을 뚫고 나가는 세계가 나온다. <기사단장 죽이기>도 터널을 지나간다는 꿈의 터널 얘기다. 그런 세상에 사람들은 끌리는 것이 아닐까? 나의 작품에서는, 망령이 저승에서 이승으로 돌아와, "꿈의 터널"을 청각적으로 체험하면서 다른 세계로 나간다. 그런 음악을 현대인들은 원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노승주 기자
노승주 기자

독자와의 소통을 통해 더 나은 내일을 만들겠습니다.

-최신기사
-인기기사